락 음악의 수많은 역사들 속에서 밴드가 활동을 그만둔 지 몇십 년이 지난 후까지도 여전히 회자되며 음악을 넘어 패션, 미술과 같은 다른 문화 예술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밴드는 정말 몇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1991년 발매한 앨범 '네버마인드'를 통해 빌보드 1위를 차지하며 음악계의 판도를 뒤바꿔버린 밴드 '너바나'가 가장 그러한 밴드라는데는 이견을 가질 수 없을 만큼 여전히 길거리에서 너바나의 티셔츠를 입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치게 됩니다.
너바나의 가장 히트곡이라 할 수 있는 이 곡의 뮤직비디오를 처음 보았을 때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커트 코베인의 날것 그대로인 듯 거친 연주와 목소리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이내 거기에 중독되어 앨범을 쭉 이어 들을 수밖에 없었고 많은 분들이 이에 공감하시리라 믿습니다.
이후 너바나의 다른 뮤직비디오나 라이브 영상들을 찾아보게 되며, 당시 느끼기엔 특이하게 생긴 기타들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었습니다. 제가 원래 알고 있던 일렉기타의 날렵하고 멋진 모습이 아니라 비대칭으로 어딘가 삐뚤어진듯하게 생긴 기타들이었죠. 지금이야 워낙 많은 정보들을 쉽게 구할 수 있어 커트 코베인이 머스탱과 재규어 모델을 많이 사용했고 이런 비대칭 기타들을 ‘오프셋’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만 제가 기타를 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던 당시만 해도 (아무래도 지방이라 더 그랬을 거 같긴 하지만) 이런 기타들은 거의 볼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재규어와 재즈 마스터가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도 알 수 없었기에 그냥 커트를 따라 하고 싶었던 친구가 저렇게 생긴 기타 무언가를 사 와서 디스토션을 걸었다가 찢어지는 듯한 하울링에 모두가 귀를 막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은 너바나의 보컬이자 한 시대의 아이콘이기도 한 커트 코베인이 연주했던 여러 기타들 중에서 가장 많이 아끼고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펜더 머스탱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2022년, 뉴욕 경매에서 450만 달러에 판매된 ‘스멜스 라이크 틴 스피릿’ 뮤직비디오의 1969년산 펜더 머스탱 (출처 : rollingstone.com)
머스탱의 시작은 1950년대 텔레캐스터, 스트라토캐스터를 성공적으로 출시한 펜더에서 기타를 처음 배우는 입문자나 학생들을 타겟으로 간편한 조작과 부담 없는 가격을 내세워 1956년 출시한 뮤직 마스터와 듀오 소닉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뮤직 마스터는 픽업이 하나만 장착된 가장 저렴한 모델이었고 듀오 소닉은 이에 픽업 하나를 더 추가한 모델로 두 모델 모두 입문자나 학생들이 연주하기 쉽도록 기존 펜더 모델들의 25.5인치 스케일이 아닌 22.5인치 스케일을 적용하였다고 합니다.
펜더의 듀오 소닉과 뮤직 마스터 (출처 : vintageguitar.com)
당시 펜더의 카달로그들 (출처 : vintageguitar.com)
1960년대 자동차 회사 포드에서 출시한 머스탱 차량의 엄청난 인기에서 영감을 얻은 펜더는 1964년, 뮤직 마스터와 듀오 소닉을 기반으로 두 모델의 22.5인치와 기존 텔레캐스터, 스트라토캐스터의 25.5인치 사이 중간 정도인 24인치 스케일 사양을 갖춘 새로운 엔트리급 모델 ‘머스탱’을 출시하게 됩니다.
1966년도의 카달로그 (출처 : vintageguitar.com)
머스탱은 이후 1982년까지 생산되었으나 펜더에서 저가 라인 모델들을 위한 자회사 브랜드 ‘스콰이어’를 출범하게 되며 다른 저가형 모델들과 함께 단종되게 됩니다. 하지만 1990년대 ‘너바나’를 시작으로 한 얼터너티브, 그런지와 같은 음악들의 인기와 더불어 오프셋 기타들과 빈티지 기타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자 펜더에서는 펜더 재팬을 통해 머스탱을 리이슈 하게 되고 이후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펜더 정식 라인업에 포함되며 재팬뿐만이 아닌 USA와 멕시코에서도 생산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1991년 잡지 ‘기타 월드’와 커트 코베인이 나눈 인터뷰 중 일부입니다.
기타월드 : 기타에 관해 말하자면, 당신은 저가형 모델을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커트 코베인 :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살 수 있으니까요. [웃음] 저는 왼손잡이인데, 가격도 적당하고 품질도 좋은 왼손잡이용 기타를 찾기가 쉽지 않거든요. 하지만 전 세계 기타 중에서 펜더 머스탱이 제일 좋아요. 아직 두 대밖에 안 가지고 있거든요.'
기타월드 : 머스탱의 어떤 면이 잘 맞았나요?
커트 코베인 : '싸고 비효율적일 뿐 아니라, 소리도 엉망이고 크기도 너무 작아요. 게다가 튜닝도 안 맞고, 프렛 보드의 현 액션을 높이려면 모든 현을 풀고 브릿지를 완전히 제거해야 해요. 손가락으로 이 작은 나사들을 돌려가며 제 예상이 맞았는지 확인해야 해요. 만약 틀리면,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해야 해요. 그 기타를 발명한 사람은 정말 멍청이었어요.”
기타월드 : 그는 레오 펜더였습니다.
커트 코베인 : '죽은 레오 펜더를 멍청이라고 부르는 건가 봐요. 이제 광고는 절대 못 받을 것 같아요. [웃음] 깁슨 광고 제의는 받았지만, 마음에 드는 깁슨을 찾을 수가 없어요.'
기타월드 : 머스탱이 당신의 유일한 기타인가요?
커트 코베인 : '아니요, 저는 66년식 재규어를 가지고 있어요. 제가 닦고 아끼는 기타죠. 제가 군중 속으로 뛰어들 때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려고요. [웃음] 요즘은 스트랫을 라이브로 쓰고 있어요. 제 머스탱을 아직 망치고 싶지 않거든요. 일본산 스트랫을 쓰는 걸 좋아하는데, 가격이 좀 더 싸고 미국산보다 프렛이 작거든요.'
커트 코베인 특유의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이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 커트는 작고 가벼운 무게와 저렴하면서도 흔하지 않고 비주류적인 감성이 느껴지는 머스탱을 정말 애정하였습니다. 위에서 말한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진한 파란 색상의 줄무늬 머스탱 외에도 소닉 블루, 피에스타 레드 색상의 여러 머스탱들을 개조하여 연주하였으며 인 유테로 머스탱, 오렌지 스탱, 스카이 스탱 I, II, III로 불리는 이 머스탱들을 따라 자신의 머스탱에 험버커와 튠오매틱 브릿지를 장착하며 개조하는 팬들을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펜더에서 커트 코베인의 머스탱은 물론 재규어까지 시그네쳐 모델로 출시를 한 적이 있으나 머스탱은 현재 단종되어 쉽게 볼 수가 없기에 대신 저희 국제미디에서 만나보실 수 있는 다른 매력적인 머스탱들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제가 선별한 이쁜 머스탱 중에서 너바나의 ‘스멜스 라이크 틴 스피릿’ 뮤직비디오가 떠오르는 스트라이프 줄무늬가 들어간 파란색 머스탱을 먼저 만나보시겠습니다.
스콰이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리즈인 클래식 바이브 시리즈에서 60년대 스타일을 바탕으로 출시한 레이크 플래시드 블루 색상의 머스탱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스트라이프 줄무늬는 경주용 자동차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아 1960-70년대 생산된 특정 모델에서만 볼 수 있는 컴페티션 페인팅으로 이 FSR (펜더 스페셜 런) 시리즈를 통해 그대로 복각해내어 빈티지한 감성을 한껏 더해주고 있습니다.
머스탱 고유의 로고와 라지 헤드, 24인치 스케일, 배럴 새들과 빈티지 스타일 트레몰로, 각 픽업의 온/오프와 더불어 인/아웃 페이즈까지 적용할 수 있는 특유의 픽업 스위칭까지 머스탱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양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다만 지판의 곡률과 프렛 사이즈는 다르게 적용하여 실제 빈티지 타입보다 훨씬 편안한 연주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음은 가장 합리적인 가격에 오리지날 펜더 USA를 느낄 수 있는 아메리칸 퍼포머 시리즈의 머스탱입니다. 펜더의 매력이 가장 잘 느껴지는 3톤 선버스트 색상이 머스탱 고유의 로고가 새겨진 라지헤드와 어우러져 클래식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퍼포머 시리즈를 보며 항상 느끼는 부분이지만 이 시리즈는 단순히 아메리칸 시리즈 중에 가격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단순한 메리트만 갖춘 것이 아니라 빈티지와 모던이 적절히 어우러지도록 퍼포머 시리즈만의 해석이 담긴 사양을 품고 있다는 것이 정말 매력적인 시리즈라고 생각합니다.
이 머스탱 역시 머스탱의 아이덴티티라 할 수 있는 24인치 스케일, 배럴 타입 새들과 빈티지 트레몰로 브릿지는 그대로 따르고 있으나 호불호가 있을 수 있는 머스탱 고유의 픽업 스위칭 시스템을 과감히 배제해버리고 보다 직관적이고 편안한 3단 토글스위치를 적용하였으며 무광 피니쉬 처리된 넥 뒷면, 9.5인치 곡률, 점보 사이즈의 프렛 사양으로 편리함 기준의 연주감을 극대화하였습니다.
제가 선별한 머스탱을 소개해 드리는 것은 끝났지만 커트 코베인을 얘기하며 이 모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어 한 대를 더 준비했습니다.
커트 코베인 자신이 애용했던 재규어와 머스탱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반으로 자른 후 합쳐 직접 디자인한 모델로 펜더에서 프로토타입 2대를 제작하였으나 정작 커트 코베인이 연주한 것은 단 하나뿐이었던 비운의 기타라고 할 수 있는 재그스탱입니다. 커트의 의도와 모델명 그대로 재규어와 머스탱의 모습이 합쳐진 외관을 보여주며 24인치 스케일은 두 모델 그대로를 따르고 있으나 픽업 셀렉터와 브릿지 트레몰로 시스템은 머스탱의 사양을 따르고 있습니다. 다소 독특한 형태의 쉐입을 가지고 있어 대중적이고 친화적인 외관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만큼 개성 있고 유니크한 디자인이 커트 코베인 특유의 반상업적이고 직설적이며 거칠고 진솔한 음악 세계를 잘 대변해 주는 것만 같습니다.
오리지날 커트 코베인의 디자인 (출처 : fender.fandom.com)
개인적으로 중고 악기 거래 커뮤니티 가입 23년 차인 만큼 그동안 수도 없이 많은 악기를 사고팔아보았고 현재도 펜더의 웬만한 라인업은 소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머스탱만큼은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고 솔직히는 그동안 크게 관심도 가지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제가 좋아하는 밴드들이 한 번씩 머스탱을 들고나오는 모습을 보며, 국제미디에 진열된 머스탱을 보며 나름 이쁜 매력이 있구나 느꼈고 이 글을 작성하면서 그 매력에 더욱 빠지고 말아버렸습니다. 저는 곧 머스탱을 사야겠습니다. 이만 먼저 사러 가보겠습니다.
그런지와 얼터너티브 록을 주류 음악 장르로 자리매김하게끔 음악계를 뒤바꿔버린 시대적 아이콘의 가장 상징적인 기타들을 국제미디에서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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